<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감성이 메말라버린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몇 글자 적는 것은 어쩌면 억지이다. 난 지금 새벽 한 시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필요없는 분량의 밤참까지 먹었고, 얼른 이 글을 써 버리고 자야겠다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내일에 대한 걱정까지 하고 있는 마당이다.
'너무 감동적인 영화였어요', '내 인생에 남을 영화에요', '장애인과 보통사람간의 아름다운 사랑이에요' 등의 빠르고 편한 말들과,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애써 굴려가며 어떤 '불친절한' 말로 이 영화에 대해 떠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편한 핵심'이 아니었던가.
혹시, 혹시라도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글을 한번 찬찬히 읽어보는 것이 3분이면 되는 컵라면을 기다리는 것 만큼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놓쳐서는 그다지 좋을 것 없는 이 영화에 대한 행운같은 만남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러브레터'이다. 이와이 슈운지의 거의 모든 영화들을 다 봤을 정도로 그의 팬이고, 그중에서도 '러브레터'는 단연 백미이다.
'러브레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 영화가 내게 던져 준 느낌이 '러브레터 이상은 없다'라는 지금까지의 절대 진리를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러브레터'는 정말 '영화'다. '이것이 바로 영화구나' 하는 바로 영화 그 '자체'인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은 '러브레터'가 가진 '내 삶을 잠시 꺼두어도 좋은' 영화적인 요소에다, 우리가 살면서 도저히, 요령껏, 살짝이라도 비껴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얘기들마저 있다.
운명적인 만남, 피상적인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 어느 하나 운명적이지 않은 만남이 있겠는가. 내가 세상에 있다는 것부터가 만남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언가와의 만남을 뜻하는 것이며, 우리가 죽는 것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만남이지 않은가.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죽는 날까지,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게해 준 사람. 아프지만, 당장이라도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것이 없다면 봄에 시들어버리는 꽃보다 더 초라해질 것 같은 삶.
조제는 츠네오와 처음 만난 순간 칼을 들었다. 그 따위 칼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세상. 누구나 그렇지만 처음부터 자신과 '남' 이지 않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적'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연한 만남이후 다행스럽게 그 둘에게 긴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걷지도 못하는 그녀가 츠네오에게 음식을 만들어줄 때, 그녀에게서 작은 희망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희망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고 잡힐 것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같이만 있어도 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 둘은 잠시 긴(?) 헤어짐도 갖게 된다. 츠네오같은 사람은 '고장난' 자신의 손녀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며 조제의 할머니가 츠네오의 방문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손녀에 대해 너무한 '막'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조제를 유일하게 지켜주던 할머니가 죽고, 조제는 불편한 몸으로 혼자 남게 된다. 사랑조차 시간을 이길 수는 없었다. 뭐 어차피 시간에 감정따위는 없었으니. 현실은 지독히도 정확하고 날카롭게 그녀에게 상처를 낸다.
항상 그렇듯 '잊지 못할 영화'의 주인공은 운명의 광대들이다.
조제와 츠네오는 사랑하지만 이별도 준비한다. 사랑도 이별도 거짓이 아니다.
도대체, 사랑,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람의 작디 작은 머리 속 한 구석을 깊숙히도 차지 해 버리며 사람의 미래까지 저당잡는 것이냐. 사랑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슬퍼할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울고 싶었다. 아니, 이건 운다고해도 속이 편할 것 같지 않았다.
혼자 남은 조제. 그녀는 보이지 않는 깊은 쓰라림을 내게 남겼다. 어린시절, 정말 아팠던 것은 피가 흐르던 상처가 아니라, 내 상처에는 아랑곳없이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었던 것처럼.
이건 영화라기보단 차라리, 혼자가 아니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 대한 되돌릴 수 없는 메아리이다.
난 진심으로 바란다.
그녀가 가진 기억들이 아픔으로 남지 않기를. 아니, 때로는 맘껏 아파주기를.
다시금 호랑이와 물고기를 만날 수 있기를.
|
| 이 글의 관련글(trackback) 주소 :: http://woogun.net/tt/rserver.php?mode=tb&sl=150
|
| 김성옥 05/11/21 21:56 x |
이거 해피엔딩 아니겠네?
오빠랑 볼까 했었는데...;; |
| woogun 05/11/22 00:50 x |
둘이 봐서 안 될 영화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혼자 봐야 더 좋을듯. 괜한 느낌일지는 몰라도.
해피엔딩이라..... |
| 별이 - 05/11/23 15:36 x |
| 정말좋아하는영화 ... :D |
|
|
|
 |
|
Total 579899 Today 805
|